코로나19로 개최 전부터 많은 우려가 있었던 2020US오픈이 2주간(8.31~9.13)의 열전을 ‘무사히’ 끝냈습니다. 안전에 대한 걱정이 컸던 대회였던지라 별 탈 없이 끝났다는 것만으로도 성공적인 개최였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여자는 나오미 오사카, 남자는 도미닉 팀이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비록 남녀 우승자는 한 명씩이지만 지난 2주동안 저마다 흘린 땀으로 자신의 소중한 꿈을 이룬 선수도 있을 테고 다음을 기약하며 아픈 눈물을 삼킨 선수도 있을 겁니다.
일부 선수들이 불참해서 조금 아쉬웠지만, 코로나 위험에 불구하고 자신의 꿈 하나만 좇아 출전한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 코트를 누비며 전 세계 테니스 팬들에게 감동과 기쁨을 선사했습니다.
다음은 이번 202US오픈에 대한 저 나름대로의 어쭙잖은 총평입니다. 동의하지 않으셔도 되고 그냥 픽하고 비웃거나 코웃음 치셔도 됩니다.^^
권순우 메이저 첫 승 신고
권순우는 1회전에서 미국의 타이손 크와트코스키를 3-1로 누르고 4전 5기 끝에 메이저 대회 첫 승을 신고했습니다. 권순우는 “코로나19로 투어가 중단된 기간에 웨이트 트레이닝을 열심히 한 덕분에 체력이 좋아졌고, 1회전은 체력으로 이겼다”고 만족해했습니다. 2회전에서 데니스 샤포발로프를 만나 첫 세트를 가져오면서 기분좋게 출발했지만 내리 세 세트를 내주고 1-3으로 졌습니다.
권순우는 “그랜드슬램에 자신감을 갖게 됐다”며 자평했습니다. 메이저 승리 맛을 봤고 덕분에 자신감까지 갖게 됐으니 큰 수확입니다. 호주오픈 4강 신화를 쓴 정현이 주춤하는 사이에 우리에게 권순우라는 새 희망이 탄생한 셈입니다. 이번 주 시작하는 로마오픈 예선전에서 패했지만 9월27일 개막하는 프랑스오픈에서 더 좋은 성적을 기대해봅니다. 정현 권순우 선수 덕분에 이제 더 이상 테니스 메이저대회를 남의 집 잔치로 생각하면서 부러워만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합니다.
남자는 Z세대 세대교체
이번 US오픈은 로저 페더러, 라파엘 나달, 노박 조코비치의 빅3로 대표되는 80년대생 중심의 테니스계가 90년대생으로 세대교체 되고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특히 Z세대의 바람이 거셌습니다. Z세대는 1990년 중후반 이후에 태어난 20세 안팎의 신예들을 일컫습니다. 이번 대회 16강에 Z세대가 무려 10명이나 이름을 올렸습니다. 캐나다의 오제 알리아심(20) 데니스 샤포발로프(21) 호주의 알렉스 디미노(21), 미국의 프란시스 티아포(22), 독일의 알렉산더 즈베레프(23) 러시아의 안드레이 루블레프(24) 다닐 메드베데프(24) 등입니다.
스포츠 과학의 발달과 의학의 발전 등으로 현역 기간이 길어진 베테랑들의 기량과 경험을 극복하지 못하고 ‘유망주’로만 불리며 큰 대회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못 내던 Z세대들이 본격적으로 세계 테니스의 중심에 서게 된 것입니다.
2016년 US오픈 우승컵을 스탄 바브린카가 들어 올린 후 지금까지 그랜드슬램 타이틀은 빅3가 나눠 가져 왔는데요, 93년생 도미닉 팀이 이번에 우승하면서 빅3의 아성에 금을 냈습니다. 물론 페더러와 나달이 불참하고 조코비치가 어이없는 실수로 실격패했기 때문에 이번 대회 우승 트로피의 값어치를 평가절하 하는 분위기도 일부 있습니다만, 세대교체의 큰 파도가 우리 앞에 몰려온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9월27일 시작하는 프랑스오픈을 보면 더 명확해질 것입니다. 물론 클레이 코트에서 열리는 프랑스오픈의 경우, 저를 포함해 어우달(어차피 우승은 나달)이라고 하는 팬들이 많겠지만 트로피를 향한 Z세대의 엄청난 도전이 예상됩니다.
여자는 파워테니스 대세
여자 테니스는 남자 테니스에 비해 일찌감치 세대교체가 이뤄졌습니다. 나오미 오사카(22) 비앙카 안드레스쿠(20), 소피아 케닌(21) 같이 20세 안팎의 어린 나이에 그랜드슬램 우승을 차지한 선수들이 잇따라 나왔습니다.
그 중심은 18년 US오픈과 19년 호주오픈에 이어 올 US오픈까지 우승한 오사카입니다. 남자 부문처럼 여자 단식에서도 불참 선수들이 많았지만 특유의 파워테니스로 결승에서 빅토리아 아자렌카를 누르고 코트 바닥에 조심스레 벌렁 누워 우승의 기쁨을 맛봤습니다. 38세의 아이 엄마 세레나 윌리엄스를 4강에서 꺾고 결승에 올라온 31세의 아이 엄마 아자렌카도 오사카의 강력한 서브와 스트로크에 저항하다가 이내 무릎을 꿇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여자 테니스는 비교적 약한 서브와 스트로크 때문에 긴 랠리로 승부를 보는 경우가 많고, 수비 위주의 선수가 정상을 차지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US오픈의 여자 경기를 보면 이제 더 이상 긴 랠리와 수비는 절대 통하지 않을 것 같더군요. 남자 못지않은 강한 서브에 반 박자 빠른 공격, 공을 아작 낼 기세로 온 힘을 다해 날리는 강력한 스트로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오사카는 물론이고 아만다 아니시모바, 제니퍼 브래디, 안나 콘타베이트, 마리아 사카리, 캐롤리나 무호바 등 20대 초중반의 젊은 선수들이 공격 위주의 파워테니스를 구사했습니다. 점점 우리 선수들의 설 자리가 없어지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US오픈에 불참했던 선수들(애슐리 바티, 시모나 할렙, 안드레스쿠, 예리나 스비톨리나, 키키 베르텐스, 벨린다 벤치치 등)이 대거 출전하는 프랑스오픈(9월27일 개막)이 벌써부터 기다려집니다.
전자 콜 제도 도입 촉매제?
이번 US오픈 대회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사람심판 대신에 호크아이라는 전자심판 제도를 도입해 운영했다는 것입니다. 2개의 메인 코트(아서애쉬, 루이암스트롱)에서만 체어 엄파이어 한 명과 선심들이 심판을 봤고, 나머지 17개(정확하지 않음) 코트에서는 체어 엄파이어 한 명만 심판을 봤습니다. 볼이 아웃되면 기계가 알아서 아웃을 외쳐주고, 서브가 서비스박스 밖으로 벗어나면 기계가 곧바로 폴트를 선언합니다. 챌린지는 없습니다. 콜이 없으면 무조건 플레이를 해야 합니다. 그냥 기계가 불러주는 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작은 대회에서 시범적으로 전자 콜을 운영한 적은 있지만, 메이저대회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되도록 코트 인원을 제한해야 해서 전자콜을 도입했지만, 선수들은 대부분 전자콜에 만족했다고 합니다. 챌린지를 신청해 볼이 1mm 차이로 인과 아웃이 결정되는 쪼는 즐거움과 선수들의 거친 항의를 보는 재미가 사라지는 건데요, 기계가 심판들의 자리를 위협한다는 사실이 더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전자콜 제도가 대세가 된다면 받아들여야겠죠.
근데 이 호크아이 설치하고 운영하는 게 꽤나 많은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기계가 사람 심판을 대체하는 것은 시간이 많이 걸리거나 일부에서만 운영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2020US오픈은 많은 이야기를 남기고 끝났습니다. 이제 이번주에 시작하는 로마오픈과 이어 열리는 프랑스오픈으로 눈길을 돌려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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