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테니스 선수이면서 요즘엔 적극적인 사회운동가로도 불리는 오사카 나오미를 보면서 떠오른 생각을 적어봅니다.
여자 테니스 나오미 오사카(세계 9위)가 2020US오픈 4강에 진출했습니다. 상대는 세계 41위 미국의 제니퍼 브래디인데요, 이번 대회에서 단 한 세트도 내준 적 없이 4강까지 올라왔으니 상승세가 만만찮습니다. 2018년 US오픈 우승자 오사카의 우세가 점쳐지지만, 오사카가 왼쪽 햄스트링 부상이 있는데다 브래디의 무실세트 기세가 무섭기 때문에 승부는 예측불허입니다.
오사카는 일본인 어머니와 아이티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자란 곳은 미국이지만, 일본 국적을 달고 테니스 선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테니스 기록을 말할 때도 아시아인으로 분류되죠. 오사카가 세계 1위가 됐을 때 ‘아시아인 첫 1위’라는 말이 가능했던 이유입니다.(주니어 시절부터 미국보다는 일본 테니스계에서 오사카를 많이 지원해줘서 일본 국적 선수로 뛰고 있다네요.)
오사카는 정상급 테니스 선수라는 수식어와 함께 ‘활동가(actvist) 오사카’로도 많이 불립니다. 사회 이슈가 있을 때 적극적으로 발언을 하고 직접 이슈를 이끌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백인경찰이나 인종 폭력으로 사망한 흑인들을 기리고 흑인인권 신장을 위해 테니스 선수로서의 명성과 영향력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오사카는 지난 8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웨스턴앤서던오픈에서는 4강 출전을 보이콧했습니다. 한 흑인이 백인 경찰의 총에 맞아 하반신 마비가 된 사건을 항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오사카는 “나는 운동 선수이기 전에 흑인 여성"이라며 "흑인 여성으로서 내가 테니스를 하는 것을 보는 것보다 즉각적인 관심이 필요한 훨씬 더 중요한 문제가 가까이 있다고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23살 오사카의 당찬 행동과 말이 대견합니다.
오사카는 이번 US오픈에서 무자비한 인종폭력에 피해를 당한 흑인들의 이름을 마스크에 새기고 코트에 들어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5경기를 치렀으니 5명의 이름이 오사카가 쓴 마스크에 적혔습니다. 그 이름 중에는 지난 5월에 백인 경찰 무릎에 목이 눌려 사망한 조지 플로이드도 있습니다. 흑인 피해자 가족들은 ”정말 감동적이다. 오사카에게 신의 축복이 있길 바란다“며 감사를 전했습니다. 오사카는 ”난 뭔가 중요한 것을 위해 US오픈을 이용하고 싶다“며 흑인 피해자 이름을 새긴 마스크 쓰기에 큰 가치를 두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오사카는 브래디와 4강전에서도 또 다른 흑인 피해자의 이름을 새긴 마스크를 쓰고 나오겠죠? 그 이름을 많은 이들이 TV를 통해 볼 것이고, 오사카의 선한 영향력은 널리널리 퍼져나갈 겁니다. ”운동선수가 운동이나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만 거두면 되지“라는 말은 23살 오사카에게는 절대 통하지 않을 말입니다.
오사카의 당찬 행동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기왕에 ”나는 운동선수 이전에 흑인 여성“이라는 말도 했으니, 오사카가 US오픈 결승전에 올라가 결승전 코트에 들어설 때는 "흑인"대신에 ”여성“을 강조하는 멋진 행동을 하나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오사카의 국적인 일본이 대한민국 젊은여성들의 인권을 무참히 짓밟았던 부끄러운 역사를 반성하는 문구를 마스크에 새겨서 쓰는 겁니다. '일본은 위안부 성범죄 사죄하라' 정도면 좋을듯한데, 마스크에 쓰기 너무 길면 Japan apology 정도로 하면 자신의 국적인 일본에게도 너무 센 표현은 아닐 것 같은데요. 오사카도 '일본인이기 이전에 23살 젊은 여성'이니까 막무가내 희망사항은 아니겠죠? 더구나 오사카는 BTS팬이니까 대한민국에 좋은 감정도 있을테니까요.
오사카에게 바라는 것과 별개로, 저는 38세 아이 엄마 세레나 윌리엄스가 US오픈 우승 트로피을 가져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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