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US오픈 남자단식 16강 대진표가 완성됐습니다. 펠릭스 오제 알리아심(20세, 21위) 등 1995년 이후에 태어난 젊은 선수들이 대거 포진한 게 눈에 띕니다. 테니스 세대교체의 신호탄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 대회 32강 진출자 중에 11명이 22세 이하 선수였고, 이 가운데 5명이 16강 티켓을 거머쥐었습니다.
차세대 영건의 범위를 25세 이하까지 확대하면 세대교체 분위기가 더욱 확연해집니다. 16명 가운데 10명이 90년대 중후반 이후에 태어난 Z세대(인구통계학자들이 그렇게 부른답니다^^)입니다. 스포츠 과학의 발달과 의학기술의 진보 등으로 선수들의 현역 활동 나이가 늘어나면서 베테랑들의 기량과 경험에 밀려 좀처럼 어깨를 펴지 못하던 Z세대가 세계 테니스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해석해도 될 듯합니다.
16강 진출자 중 가장 어린 선수는 2000년 8월생 스무 살 캐나다의 알리아심입니다. 1999년생 21살 선수는 호주의 알렉스 디미노(28위), 스페인의 다비도비흐 포키나(99위), 캐나다의 데니스 샤포발로프(17위) 3명이 들어갔습니다. 프란시스 티아포(82위)는 1998년생 22세이고, 알렉스 즈베레프(7위, 23세)와 안드레이 루블레프(14위, 23세)는 1997년 생입니다. 보르나 코리치(32위), 마테오 베레티니(8위), 다닐 메드베데프(5위)는 1996년생 24세입니다.
물론 성급한 호들갑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번 대회에는 로저 페더러, 라파엘 나달, 스탄 바브린카, 델 포트로, 포니니, 케이 니시코리, 가엘 몽피스 등이 코로나와 부상 등을 이유로 불참했기 때문입니다. 정색하고 반박하긴 어렵지만, 세대 교체의 대세는 거스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 눈엔 캐나다 선수들이 돋보입니다. 오제 알리아심, 데니스 샤포발로프, 바섹 포스피실(90위, 30세) 3명이 16강에 진출했습니다. 캐나다 선수들이 그랜드슬램에서 무려 3명이나 16강에 진출한 건 처음이라고 합니다. 캐나다를 대표하는 밀로스 라오니치는 64강에서 포스피실에게 1-3으로 졌습니다.
그 중에 또 눈에 들어오는 선수가 오제 알리아심입니다. 알리아심의 강력한 서브와 포핸드를 본 분들이라면 다들 저처럼 생각하실 겁니다. 1라운드에서 브라질의 몬테이로를 맞아 세 세트를 타이브레크까지 가는 접전 끝에 3-1로 이긴 후에 2회전에서 전 세계 1위 앤디 머레이를 서브와 스트로크에서 압도하며 3-0으로 누르고 3회전 32강에서도 프랑스의 모테를 3-0으로 제압했습니다. 테니스 4대 메이저대회 16강에 진출한 첫 2000년대생 선수가 됐습니다
신장 193cm의 알리아심은 메이저대회 본선 진출이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지난해 윔블던에서 32강에 올랐고 올 초 호주오픈에서는 1회전에 탈락했습니다.
알리아심은 패기와 침착함으로 무장한, 멘탈이 강한 선수입니다. 앤디 머레이와 경기에서 알리아심의 표범처럼 매서운 눈빛과 침착함을 보신 분들이라면 다들 저처럼 생각하실 겁니다. 알리아심은 16강 진출을 확정지은 후 인터뷰에서 “난 코트 밖에선 매우 친절한 사람이다. 하지만 일단 코트에 들어가면 승리가 최고이기 때문에 동물적인 킬러본능으로 경기에 임한다”고 말했답니다. 젊은 패기가 느껴지는 말입니다.
알리아심은 11살 때인 2011년 US오픈 때 아서 애쉬스타디움에서 열리는 앤디 머레이와 펠리시아노 로페즈의 32강 대결을 직관했다고 하네요. 그리고 9년이 지나서는 선수로 아서 애쉬 스타디움에 와서 그랜드슬램 3회 우승자 앤디 머레이를 누르고 역사를 썼습니다.
17년에 프로 무대에 들어선 알리아심은 19년부터 지금까지 5번의 ATP 대회에서 결승에 오르는 등 최근 1년 사이에 무섭게 성정했습니다. 안타깝게도 5번 모두 패했습니다. 특히 코로나19로 3월 중순부터 투어 일정이 중단되기 전에 열린 로테르담과 마르세유 대회에서 잇따라 결승에 진출했습니다. 각각 몽피스와 치치파스에게 패했지만 명실상부한 정상급 선수 반열에 오르게 됐습니다.
알리아심의 16강 상대는 유력한 우승 후보 도미닉 팀입니다. 엄청난 산을 만난 겁니다. 팀은 32강에서 마린 칠리치를 3-1로 눌렀습니다. 팀과 생애 처음으로 대결하는 알리아심은 “(32강전까지) 지난 세 경기에 매우 만족한다. 특히 체력을 많이 쓰지 않았다는 점이 고무적이다”며 “팀과의 16강전은 내 미래를 위해서도 매우 흥미로운 경기가 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조코비치의 18번째 그랜드슬램 우승도 좋고, 팀의 첫 메이저 우승도 좋지만요, 어린 알리아심이 깜짝 우승해서 세계 테니스를 한 번 뒤집어 놓는 것도 재밌을 것 같습니다.
2020US오픈 16강 대진
노박 조코비치-카레노 부스타
데니스 샤포발로프-다비드 고팡
보르나 초리지-조단 톰슨
다비드포흐 포키나-알렉산더 즈베레프
마테오 베르테니-안드레이 루블레프
프란시스 티아포-다닐 메드베데프
바섹 포스피실-알렉스 디미노
팰릭스 오제 알라아심-도미닉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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