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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혁명과 상상, 돈 제국 종교를 통한 인류의 진보와 통합의 서사시

살아가는 이야기들

by 법을알자 2020. 7. 28.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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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겉표지.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히브리대학교 역사학 교수 유발 하라리의 대표작 '사피엔스'는 사피엔스의 등장부터 현재까지의 인류사를 조망한 책이다. 사피엔스라는 현 인류의 조상이 어떻게 다른 종을 제치고 지구를 지배했는지를 통찰한다. 통상의 역사서처럼 시대순으로 등장하는 주요 사건들이나 인물들을 나열하면서 해당 시대의 모습과 의미 등을 설명하는 책은 아니다. 하라리는 책에서 인류는 인지혁명-농업혁명-과학혁명의 단계를 거듭하면서 서로 통합하고 협력하는 네트워크를 넓히는 과정을 통해 발전과 진화를 달성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우리가 배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네안데르탈인, 호모 에렉투스, 호모 사피엔스라는 인류의 진화과정을 부정한다. 이 종들이 동시대에 다른 지역에 살았는데, 사피엔스가 지중해쪽에 살던 네안데르탈인을 멸망시키는 등 다른 종을 살해하고 땅을 빼앗아 지구에서 가장 강한 종 지위에 올랐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사피엔스에게 사촌형제 살인범이라는 프레임을 씌운다. 우리 조상을 살인범이라 부르는 게 마뜩찮지만 살아남은 자가 강한 자이기에 눈 딱 감고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저자는 세가지 혁명에 대해 설명하면서 지구의 최강자 사피엔스의 생존기와 정복기, 발전사를 들려준다.

인지혁명이란 인류역사 약 7만년전부터 3만년 전 사이에 출현한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방식이다. 사피엔스는  '우연한' 계기를 통해 그 전에 없던 방식으로 생각하고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언어를 사용해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피엔스는 인지혁명 덕분에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지금 우리도 그렇듯이 사피엔스도 뒷담화를 좋아했다고 한다. 뒷담화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기도 하지만 실재하지 않은 것을 상상하거나 꾸며내 이야기의 재미를 더하기도 한다. 사피엔스는 상상이 가미된 뒷담화를 나누면서 보다 유연한 사고체계를 가지게 되었고 이를 통해 모르는 사람과도 의사소통하면서 협력망을 넓혀간다는 것이다. 단순한 상상을 넘어 집단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됨으로써 신화를 만들어 내게 됐고 이는 흩어져 파편화된 채 살아가던 사피엔스들을 하나로 묶어 협력하게 했다. 인지혁명으로 인해 뒷담화가 많아지고 상상력이 커지면서 다른 사람들과 뒷담화와 상상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이른바 소규모 공동체가 생기게 된 것이다.

유발 하라리.

인지혁명을 통한 사피엔스의 상호협력은 사피엔스가 다른 침팬지나 개미와 다르게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예컨대, 사피엔스는 부족정신, 국가, 인권 같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정보를 상대에게 전달하는 능력을 발휘하게 됨으로써 규모가 더 크고 응집력이 더 강한 집단을 이 룰 수 있었다. 하라리는 실재하지도 않는 푸조 회사(자동차회사)가 마치 사람처럼 어떤 사안에 대해 책임을 지고 대응하는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상황을 예로 들며 인지혁명을 설명한다.

다음 단계인 농업혁명은 수렵 채집의 이동생활을 하던 사피엔스가 농축산물을 한 곳에서 길러 소비하는 정착생활을 하게 된 것을 의미한다. 더 많이 안정적으로 생산하게 됐으니 더 행복해졌을까? 저자는 농업혁명은 인류역사 최대의 사기라고 주장한다. 수렵채집인보다 더 열심히 오래 일했지만 더 열악한 식사를 하게 됐고, 재배작물의 한계와 가축 키우기로 인한 영양 부족과 질병에 시달렸다. 하루종일 밀밭에서 밀을 살펴야했고 생산량 증가보다 빨리 인구가 늘면서 풍요를 경험하지 못했다. 인류 역사상 첫 워킹푸어가 등장한 것이다. 농업혁명은 인류가 집단적으로 규모를 키우고 외견상 성공을 구가했지만, 이는 사피엔스 개개인의 고통을 바탕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사기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다만, 농업혁명은 인류가 정착생활을 가능하게 해서 밀집된 도시와 강력한 제국을 만들 길을 열어줬고, 인지혁명으로 이룬 상상력을 발판으로 지구상에서 유례없이 거대한 협력의 네트워크를 만드는데 기여했다.  

하라리는 '상상의 질서'라는 개념을 내놓는다. 실재하지 않는 가상의 실재를 만들어 집단끼리 공유하고 따른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으로 공통의 신화라는 상상속 질서는 사피엔스들이 같은 허구를 공유하면서 집단의 연대의식과 협력망을 더 끈끈하게 하고 협력의 지평을 넓히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보복적 내용과 신분 계급을 당연시 한 바빌론왕국의 함무라비 법전과 창조주라는 신화 속 인물이 인간에게 태어날 때부터 주었다는 인권을 사람들이 지키고 보존해야 할 소중한 가치로 삼아 규범화한 미국의 독립선언문은 상상속 질서의 대표적인 사례다. 애초부터 계급이니 인권은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정치경제적 불평등과 종교를 기반으로 계급과 인권이라는 상상속 질서가 사람들에게 이식됐으며, 사람들은 그 상상속 질서를 통해 기존 질서에 순응하고 서로 협력하면서 공동체를 유지하고 집단의 힘을 키웠다.

 

저자가 주장하는 인류사의 방향은 인류의 통합이다. 그렇다면 인류의 협력을 확대하고 인류가 통합하는 전 지구적 비전을 달성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돈(상인), 제국(정복자), 종교(예언자)라는 세가지 보편적 질서가 신화와 허구 등의 상상속 질서로 약하게 묶여 있던 인류를 더 단단히 연결하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고 설파한다. 인류는 이 보편적 질서 세가지 덕분에 '우리 대 그들'로 나누던 이분법적 진화구도를 초월하게 되고 진정한 '우리'로 향하고 있다.

 
돈, 즉 화폐는 물물거래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생겨났다. 돈이 생기면서 서로 모르는 사이에 신뢰를 기반으로 거래와 교역을 할 수 있게 됐고 인류 통합이라는 역사의 목표 달성은 더 가까워졌다. 즉, 세계는 화폐의 등장과 발전에 따라 금과 은, 미국 달러처럼 신뢰받는 소수의 통화를 바탕으로 국경과 문화를 초월하는 단일 화폐권역이 됐으며, 결국 지구 전체가 단일 경제정치권역으로 통합되는 기초가 놓였다고 하라리는 말한다. 유럽연합이 유로화라는 단일 화폐로 연합의 결속력을 강화한 것처럼.

하라리는 세상이 돈이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는 크고 비정한 시장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는 것을 경계했다. 따라서 인류의 통합은 순수하게 경제적인 과정으로만 봐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유럽연합이 화폐통일만으로는 결코 완전한 통합을 달성할수 없는 것과 맥이 같다. 수천개의 고립된 문화가 세월이 가면서 점차 합쳐져서 오늘날의 지구촌을 형성했는지를 이해하려면 돈 말고도 제국, 종교 같은 요인들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하라리가 인류 통합을 촉진할 보편적 질서 후보로 두번째 언급한 것은 제국이다. 제국은 다양한 소수민족과 생태적 지역들을 하나의 정치 체제 하에 묶어서 인류와 지구를 하나로 융합했다. 중세시대부터 스페인, 포트투갈, 영국, 네덜란드 등 유럽국가들은 아메리카의 발견을 계기로 다른 대륙을 정복하고 지배하면서 제국으로서 부흥을 이뤘다. 이 과정에서 제국의 문화가 피지배 민족에게 전파됐고, 지배국과 피지배국의 갈등 과정을 거쳐 피지배국은 독립 등의 지위를 얻게 되고 지배국은 힘을 잃고 식민국에서 빠져나와 본국으로 돌아온다. 그러는 사이에 제국의 문화는 더 다양한 지역에서 계속 꽃피고 발전하면서 인류 통합을 가속화했다는 것이 하라리의 주장이다.

식민 지배를 매우 긍정적으로 해석한 셈인데, 이 대목은 선뜻 동의할 수 없다. 하라리는 영국의 인도 지배 덕에 인도에 철도가 놓이고 사법체계가 확립되는 등 인도가 발전할 수 있는 기본 조건을 갖게 됐으니 강국의 식민지배를 무조건 나쁘게만 볼 게 아니라는 식의 주장을 한다. 일제시대에 갖춘 인프라가 한국 근대화에 큰 도움이 됐으니 일본이 잘 한 점은 인정해주자는 일부 정신나간 이들의 궤변이 떠올랐다.

하라리는 오늘날에는 전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의 등장이라는 환상이 실현될지도 모른다며 세계통일의 기대감을 보인다. 정치적으로 조각나 있는 국가들이지만 어느 국가도 독자적인 경제정책을 실행하거나 마음대로 전쟁을 선포할 수도 없으며, 매우 강력한 자본과 노동, 정보의 흐름이 세계를 바꾸고 국가 간의 경계나 한 국가의 의견이 점점 더 무시되고 있기 때문에 단일 세계정부가 나서는 것이 더 간단하지 않느냐는 설명이다.   

종교는 인류를 통합하는 세번째 보편적 질서다. 하라리는 종교를 초인적 질서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한 인간의 규범과 가치의 체계라고 규정한다. 다신론으로 시작한 종교는 일신교와 이신교를 낳았다. 하라리는 종교의 출현은 역사상 가장 중요한 혁명의 하나였고, 보편적 제국과 보편적 화폐의 등장과 매우 비슷하게 인류의 통일에 크게 기여했다고 밝힌다.

종교는 다신론에서 시작해 일신론과 이신론으로 분화했다. 일신론은 다른 신을 믿는 이들을 배격했고, 이신론은 선한 신과 악한 신을 만들어내 선한 신의 위상을 높이는 방식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이신론을 만든 덕에 "난 착하게 살고 있는데 왜 잘 살지 못하느냐"라며 사람들이 신에 보내는 하소연과 원망을 나쁜 신의 탓으로 돌릴 수 있게 됐다. 하라리는 종교가 신들의 역사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불교와 도교, 유교, 스토아철학 등은 인간이 신을 섬기는 대신에  자연법의 지배를 받는 존재가 되기 때문에 종교의 큰 부분이라고 기술한다. 하라리는 자유주의, 공산주의, 자본주의, 민족주의, 국가사회주의 같은 이데올로기도 종교의 범주에 넣어 인류 통합 과정을 이해한다.

종교가 화합과 통일 대신에 갈등과 분쟁의 중심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하라리가 말하는 종교의 인류통합 역할을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혼란스럽다. 종교가 인류의 부분부분은 통합하고 있지만, 전 지구적 관점에서 본다면 종교는 지역간 민족간분열을 조장하고 강화하는 부정적 측면도 분명 갖고 있다.

하라리에 따르면 인류 역사는 1500년경 가장 중대한 선택을 했다. 영국 등 서유럽에서 시작한 과학혁명이다. 과학혁명을 촉발한 것은 인간이 스스로 무지하다는 점을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하라리는 주장한다. 하라리는 과학혁명은 지식혁명이 아니라 무지의 혁명이라고 단언한다. 모르기 때문에 새로운 지식의 획득을 위해 관찰하고 수학적으로 문제를 명료하게.해결하려 노력했고 이를 통해 새 이론을 만들어 인류 진보에 도움이 될 새로운 기술을 이끌어내 인류의 발전과 통합에 기여했다. 예를 들어 증기와 내연기관을 만들어 산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고 지구를 진보시켰다.

하라리는 과학혁명의 과실이 당시 잘 살았던 중국이나 인도같은 곳이 아니라 빈곤에 시달리던 유럽으로 돌아가 유럽이 세계의 중심 역할을 하게 된 것은 유럽이 스스로 무지를 인정하면서 적극적으로 과학발전을 도모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반면 중국은 과학을 실물경제에 활용하려는 의지가 전혀 없었다. 때문에 화약을 유럽보다 앞서 발명하고도 축제 때나 쓰는 생활용품으로 전락시켰다.

하라리는 과학의 발전은 과학이 정치와 자본의 필요에 응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정치나 자본에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과학연구와 기술개발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중세부터 유럽의 제나라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정복하는 과정에서 과학자들이 많은 역할을 한 것은 정치와 자본이 과학적 연구와 실용적 기술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하라리는 과학혁명의 부정적인 측면에도 주목한다. 생명공학의 발달로 인한 인간신체의 조작이나 창조다. 메소포타미아 문명 때 수행됐던 불사(죽지 않는)프로젝트인 이른바 '길가메시 프로젝트' 나 신을 흉내내서 인간을 만들려다가 괴물로 잉태된 프랑켄슈타인을 언급하면서, 발전하는 과학의 어두운 면에 주목한다. 그러면서 생명 조작과 창조라는 신 놀이를 하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존재인 인류의 미래를 걱정한다. 핵폭탄을 만들어 스스로 위험에 빠진 인류의 오만과 오류를 지적한 하라리는 결코 만족하지 못하면서 책임지지 않는 위험한 존재로서 우리 인류는,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라는 자문 대신에 '무엇을 원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천착해 답을 구해야한다고 말한다.

하라리는 그 옛날 사피엔스가 인지혁명을 앞세워 다른 종을 절명시키고 지구 최강자 자리에 오른 것처럼, 현존 인류도 생명공학의 발전을 디딤돌 삼아 신의 영역에 도전하려는 위험한 시도를 하고 있다고 걱정한다. 그 옛날 호모사피엔스가 모든 종을 누르고 지구를 지배한 것처럼, 사피엔스가 지금 그들의 욕심과 오만을 채우기 위해 생명을 조작하고 지구환경을 변형시키는 대가로 사피엔스도 언젠가 어떤 다른 종에 의해 절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독자에게 암시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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